사무엘 퓰러

Samuel Fu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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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미국 매사추세츠 워체스터에서 태어난 사무엘 퓰러는 활동할 당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감독대열에 속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뉴욕에서 자라났고 이미 12살 때부터 "뉴욕저널"의 사환으로 일했다. 이 때부터 언론사와 관련을 맺게 되어 몇 년동안 근무하기하였다. 특히 "샌 디에고 선"에서 퓰러는 유명한 살인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리포터로서 활동했는데 그만두고 미국 전역을 떠도는 여행을 하게 된다.
퓰러는 싸구려 소설을 쓰면서 정착하게 되었고 가명으로 여러 소설들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로스엔젤레스에서 영화 에디터로 일하는 친구로 인해 <경례:Hats Off>(1937)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는다.
여러 작품의 글을 쓰는 동안 전쟁이 일었나고 몇 년동안 군인으로 참가하기고 하였으며 이 와중에도 소설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직후 마침내 퓰러는 <나는 제시 제임스를 쐈다:I Shot Jesse James>(1949)로 감독데뷔한다.

두번째 작품 <아니조나의 남작: The Baron of Arizona>(1950) 등을 만들지만 그가 유명세을 얻은 것은 <철모: The Steel Helmet>(1951)로부터이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전쟁영화로 흥행에도 성공하게 된다.
<남쪽거리에서의 횡재: Pickup on South Street>(1953)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동사자상 수상을 비롯 <중국의 문: China Gate>(1957), <40명의 총잡이들: Forty Guns>(1957), <충격의 복도: Shock Corridor>(1963) 등 주로 개인의 내면 갈등을 그린 영화들을 만들어내면서 50년대를 그의 전성기로 보내게 된다.

60년대 들어서 하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는데 극도로 확장된 익스트림 클로즈업 등과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범죄영화들은 비평쪽이나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벌거벗은 키스: The Naked Kiss>(1964)을 끝으로 한동안 헐리우드에 발을 못 붙인 퓰러는 TV로 자리를 옮겨 <베토벤 거리의 죽은 비둘기: Dead Pigeon on Beethoven Street>(1972)을 만들기도 하였다.
다시 헐리우드로 복귀한 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크고 붉은 것: The Big Red One>(1979)을 만들고 얼마 안 있어 <마견: White Dog>(1982)을 감독했다.

하지만 <마견>으로 인종차별주의적인 정서가 다분히 있다는 비난을 받았고 이를 마지막으로 헐리우드에선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 퓰러는 프랑스로 가서 <마담 엠마: Street Of No Return>(1989)등을 감독하고 몇 편 작품의 배우로서 참여하기도 하였다.

마틴 스콜세지, 쿠엔티 타란티노, 짐 자무쉬, 빔 벤더스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사무엘 퓰러는 1997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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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미국 매사추세츠 워체스터에서 태어난 사무엘 퓰러는 활동할 당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감독대열에 속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뉴욕에서 자라났고 이미 12살 때부터 "뉴욕저널"의 사환으로 일했다. 이 때부터 언론사와 관련을 맺게 되어 몇 년동안 근무하기하였다. 특히 "샌 디에고 선"에서 퓰러는 유명한 살인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리포터로서 활동했는데 그만두고 미국 전역을 떠도는 여행을 하게 된다.
퓰러는 싸구려 소설을 쓰면서 정착하게 되었고 가명으로 여러 소설들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로스엔젤레스에서 영화 에디터로 일하는 친구로 인해 <경례:Hats Off>(1937)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는다.
여러 작품의 글을 쓰는 동안 전쟁이 일었나고 몇 년동안 군인으로 참가하기고 하였으며 이 와중에도 소설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직후 마침내 퓰러는 <나는 제시 제임스를 쐈다:I Shot Jesse James>(1949)로 감독데뷔한다.

두번째 작품 <아니조나의 남작: The Baron of Arizona>(1950) 등을 만들지만 그가 유명세을 얻은 것은 <철모: The Steel Helmet>(1951)로부터이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전쟁영화로 흥행에도 성공하게 된다.
<남쪽거리에서의 횡재: Pickup on South Street>(1953)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동사자상 수상을 비롯 <중국의 문: China Gate>(1957), <40명의 총잡이들: Forty Guns>(1957), <충격의 복도: Shock Corridor>(1963) 등 주로 개인의 내면 갈등을 그린 영화들을 만들어내면서 50년대를 그의 전성기로 보내게 된다.

60년대 들어서 하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는데 극도로 확장된 익스트림 클로즈업 등과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범죄영화들은 비평쪽이나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벌거벗은 키스: The Naked Kiss>(1964)을 끝으로 한동안 헐리우드에 발을 못 붙인 퓰러는 TV로 자리를 옮겨 <베토벤 거리의 죽은 비둘기: Dead Pigeon on Beethoven Street>(1972)을 만들기도 하였다.
다시 헐리우드로 복귀한 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크고 붉은 것: The Big Red One>(1979)을 만들고 얼마 안 있어 <마견: White Dog>(1982)을 감독했다.

하지만 <마견>으로 인종차별주의적인 정서가 다분히 있다는 비난을 받았고 이를 마지막으로 헐리우드에선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 퓰러는 프랑스로 가서 <마담 엠마: Street Of No Return>(1989)등을 감독하고 몇 편 작품의 배우로서 참여하기도 하였다.

마틴 스콜세지, 쿠엔티 타란티노, 짐 자무쉬, 빔 벤더스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사무엘 퓰러는 1997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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