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 앤드류스

Julie Andr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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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10-01 출생ㅣ영국ㅣ메리 포핀스 (1964) 데뷔
1935년 10월 1일 영국의 울톤 온 테임즈에서 태어난 줄리 앤드류스는 어려서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고 전쟁이 끝난 후 브로드웨이에서 한 동안 활약하다가 브로드웨이의 블록버스터라 일컬어졌던 대자본의 뮤지컬 <마이 페어레이디: My Fair Lady>(1956)로 하룻밤 새에 스타가 되어버렸고 1957년 TV뮤지컬 <신데렐라: Cinderella>의 타이틀 롤을 맡는다. 앤드류스는 이후 주로 TV에서 쇼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를 유지해나갔고 영화에는 60년대 중반에나 출연하게 된다. TV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앤드류스의 진가는 영화에서 발휘되기 시작한다. 64년에 출연한 <메리 포핀스>(1964)는 월트 디즈니가 제작한 가족 뮤지컬로서 쥴리 앤드류스는 때묻지않은 특유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노래솜씨를 보여 이 영화는 그간에 디즈니에서 제작된 어떤 영화보다도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앤드류스는 영화화 된 뮤지컬 <마이 페어레이디: My Fair Lady>(1964)의 주연을 오드리 헵번에게 빼앗긴 것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획득하며 정상의 자리에 선다. 이듬해 앤드류스는 자신의 영화일생에 가장 뛰어난 역작으로 남을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1965)에 출연하게 된다.비록 여우주연상은 놓쳤지만 수 많은 히트곡과 함께 그해 아카데미를 휩쓸면서 영화팬들의 가슴에 오래토록 남아있는 이 영화로 앤드류스는 영화인생의 최절정기에 맞이한다. 하지만 앤드류스는 이 영화 이후로 그다지 좋은 배역을 얻어내지 못했다. 뮤지컬 배우로 너무도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일까. 히치코크 감독의 <찢겨진 커튼>(1966)등 일반적인 극영화에서 보여지는 앤드류스는 전작 뮤지컬 대작에 비해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고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70년대 들어 나이트 클럽과 TV콘서트 등으로 간간이 모습을 비추던 앤드류스는 빠르게 변하는 헐리우드의 입맛에 자신을 맞춰나가는 타이밍을 놓쳤고 뜨겁게 열광하던 그녀의 팬들은 하나둘 그녀를 관심밖으로 내돌렸다. 두 번째 남편이었던 영화감독 블레이크 에드워즈도 이점을 안타깝게 여겨 그녀를 위한 영화를 만들어내곤 했으나 전성기때의 인기는 찾아올 수 없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버린 앤드류스는 극영화에서 아이의 어머니나 단조로운 조연연기로 만족해야했고 목수술로 인해 아름다운 목소리마저 다치게 되자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 1992년 < A Fine Romance>를 끝으로 영화계를 떠난 앤드류스는 천사같았던 외모와 걸맞게 남편과 함께 부모없는 베트남 아이들을 입양해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키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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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10-01 출생영국메리 포핀스 (1964) 데뷔
1935년 10월 1일 영국의 울톤 온 테임즈에서 태어난 줄리 앤드류스는 어려서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고 전쟁이 끝난 후 브로드웨이에서 한 동안 활약하다가 브로드웨이의 블록버스터라 일컬어졌던 대자본의 뮤지컬 <마이 페어레이디: My Fair Lady>(1956)로 하룻밤 새에 스타가 되어버렸고 1957년 TV뮤지컬 <신데렐라: Cinderella>의 타이틀 롤을 맡는다. 앤드류스는 이후 주로 TV에서 쇼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를 유지해나갔고 영화에는 60년대 중반에나 출연하게 된다. TV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앤드류스의 진가는 영화에서 발휘되기 시작한다. 64년에 출연한 <메리 포핀스>(1964)는 월트 디즈니가 제작한 가족 뮤지컬로서 쥴리 앤드류스는 때묻지않은 특유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노래솜씨를 보여 이 영화는 그간에 디즈니에서 제작된 어떤 영화보다도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앤드류스는 영화화 된 뮤지컬 <마이 페어레이디: My Fair Lady>(1964)의 주연을 오드리 헵번에게 빼앗긴 것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획득하며 정상의 자리에 선다. 이듬해 앤드류스는 자신의 영화일생에 가장 뛰어난 역작으로 남을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1965)에 출연하게 된다.비록 여우주연상은 놓쳤지만 수 많은 히트곡과 함께 그해 아카데미를 휩쓸면서 영화팬들의 가슴에 오래토록 남아있는 이 영화로 앤드류스는 영화인생의 최절정기에 맞이한다. 하지만 앤드류스는 이 영화 이후로 그다지 좋은 배역을 얻어내지 못했다. 뮤지컬 배우로 너무도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일까. 히치코크 감독의 <찢겨진 커튼>(1966)등 일반적인 극영화에서 보여지는 앤드류스는 전작 뮤지컬 대작에 비해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고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70년대 들어 나이트 클럽과 TV콘서트 등으로 간간이 모습을 비추던 앤드류스는 빠르게 변하는 헐리우드의 입맛에 자신을 맞춰나가는 타이밍을 놓쳤고 뜨겁게 열광하던 그녀의 팬들은 하나둘 그녀를 관심밖으로 내돌렸다. 두 번째 남편이었던 영화감독 블레이크 에드워즈도 이점을 안타깝게 여겨 그녀를 위한 영화를 만들어내곤 했으나 전성기때의 인기는 찾아올 수 없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버린 앤드류스는 극영화에서 아이의 어머니나 단조로운 조연연기로 만족해야했고 목수술로 인해 아름다운 목소리마저 다치게 되자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 1992년 < A Fine Romance>를 끝으로 영화계를 떠난 앤드류스는 천사같았던 외모와 걸맞게 남편과 함께 부모없는 베트남 아이들을 입양해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키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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