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로렌

Sophia Lo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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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4-09-20 출생ㅣ이탈리아 로마ㅣSophia Loren (1950) 데뷔
1934년 9월 2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소피아 로렌의 본명은 소피아 시콜론 Sofia Scicolone 이다.

불륜관계에서 태어났고, 나폴리의 변두리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던 로렌은 돈을 벌기 위해 열 네 살 때 미인대회에 나간다. 직업모델로 생활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많은 영화들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로마 미인대회에 출전한 로렌은 22살 연상의 제작자 카를로 폰티를 만났고, 그의 후원아래 <선거: The Vote>(1950)를 비롯한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대스타로 발돋음할 기회를 엿본다. < Anna>(1951)가 대흥행을 기록하면서 스타반열에 올랐고, 1950년대 이탈리아의 섹스심벌로서 큰 인기를 모았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안소니 퀸과 함께 출연한 < Attila Flagello di Dio>(1955)를 통해서이다. 이 영화는 새로 편집되어 국제적으로 배급되었고, 악평을 얻었지만 그녀의 관능미는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헐리우드 입성을 앞두고 영어권 유럽영화들에서 캐리 그란트나 알란 라드와 같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었었다.

1957년 드디디 로렌과 폰티는 멕시코에서 결혼을 올렸는데 카톨릭을 신봉하는 이탈리아에서 폰티는 중혼죄로 기소되었고, 이 커플은 이탈리아에서는 합법적인 부부가 되길 포기해야했다. 1967년에서야 이들을 정식부부로 인정받게 되었고 로렌은 평생동안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며 지내왔다.

한편, 파라마운트와 계약을 맺어 <엘름에서의 열망: Desire Under the Elms>(1958)으로 헐리우드에 정식입성했고, 마틴 리트 감독의 <검은 수선화: The Black Orchid>(1959)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하지만, 그녀의 관능미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출연작들이 계속 흥행난조를 보이자 유럽으로 돌아가 이탈리아에서 비토리오 데 시카와 함께 < La Ciociara>(1961)를 찍게 된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명연기로 그녀는 아카데미와 칸느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이례적인 기록을 낳으면서 진정한 연기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녀는 수많은 부침을 거듭하면서 명연기자들과 나란히 무대에 섰었다. <엘 시드: El Cid >(1961)에서는 찰톤 헤스톤과, < Ieri, Oggi, Domani>에서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등과 공연했었지만 1960년대 중반 MGM시절에는 전형적인 외국여인역만 맡아 오점을 남겼다. 하지만, 배우로서 그녀의 인기는 여전해서 1969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배우상을 수상한다.

1970년 <해바라기>(1970)를 제외하고는 흥행과는 도무지 거리가 멀었던 탓에 70년대 줄곧 이탈리아에서 지내던 그녀는 < Una Giornata Particolare>(1977)로 인기를 얻어 헐리우드에 재입성하여 두 편의 스릴러 영화를 찍었다.
사년간의 공백 끝에 < Qualcosa di Biondo>(1984)에서 마스트로야니와 다시 호흡을 맞췄고, 1991년 오랜 연기생활에 대한 경의의 표시인 아카데미 특별공로상을 수상한 후 거의 모습을 비치지 않다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패션쇼: Ready to Wear>(1994)에 출연하여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코미디 <그럼피어 올드맨>(1996)에 출연하는 행운도 얻었다.
1979년 그녀의 삶을 솔직하게 고백한 자서전을 출간하여 화제를 불러 보았고, 1982년에는 탈세혐의로 이탈리아에서 18일간 감옥에 살기도 했었다. 1999년에는 자신의 사진을 마구 남용하는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세기의 섹시스타 소피아 로렌의 주위는 잠잠할 날이 없다.

자신의 이름을 상표로 한 향수회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외에도 미용과 관련된 서적들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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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09-20 출생이탈리아 로마Sophia Loren (1950) 데뷔
1934년 9월 2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소피아 로렌의 본명은 소피아 시콜론 Sofia Scicolone 이다.

불륜관계에서 태어났고, 나폴리의 변두리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던 로렌은 돈을 벌기 위해 열 네 살 때 미인대회에 나간다. 직업모델로 생활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많은 영화들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로마 미인대회에 출전한 로렌은 22살 연상의 제작자 카를로 폰티를 만났고, 그의 후원아래 <선거: The Vote>(1950)를 비롯한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대스타로 발돋음할 기회를 엿본다. < Anna>(1951)가 대흥행을 기록하면서 스타반열에 올랐고, 1950년대 이탈리아의 섹스심벌로서 큰 인기를 모았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안소니 퀸과 함께 출연한 < Attila Flagello di Dio>(1955)를 통해서이다. 이 영화는 새로 편집되어 국제적으로 배급되었고, 악평을 얻었지만 그녀의 관능미는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헐리우드 입성을 앞두고 영어권 유럽영화들에서 캐리 그란트나 알란 라드와 같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었었다.

1957년 드디디 로렌과 폰티는 멕시코에서 결혼을 올렸는데 카톨릭을 신봉하는 이탈리아에서 폰티는 중혼죄로 기소되었고, 이 커플은 이탈리아에서는 합법적인 부부가 되길 포기해야했다. 1967년에서야 이들을 정식부부로 인정받게 되었고 로렌은 평생동안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며 지내왔다.

한편, 파라마운트와 계약을 맺어 <엘름에서의 열망: Desire Under the Elms>(1958)으로 헐리우드에 정식입성했고, 마틴 리트 감독의 <검은 수선화: The Black Orchid>(1959)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하지만, 그녀의 관능미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출연작들이 계속 흥행난조를 보이자 유럽으로 돌아가 이탈리아에서 비토리오 데 시카와 함께 < La Ciociara>(1961)를 찍게 된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명연기로 그녀는 아카데미와 칸느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이례적인 기록을 낳으면서 진정한 연기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녀는 수많은 부침을 거듭하면서 명연기자들과 나란히 무대에 섰었다. <엘 시드: El Cid >(1961)에서는 찰톤 헤스톤과, < Ieri, Oggi, Domani>에서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등과 공연했었지만 1960년대 중반 MGM시절에는 전형적인 외국여인역만 맡아 오점을 남겼다. 하지만, 배우로서 그녀의 인기는 여전해서 1969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배우상을 수상한다.

1970년 <해바라기>(1970)를 제외하고는 흥행과는 도무지 거리가 멀었던 탓에 70년대 줄곧 이탈리아에서 지내던 그녀는 < Una Giornata Particolare>(1977)로 인기를 얻어 헐리우드에 재입성하여 두 편의 스릴러 영화를 찍었다.
사년간의 공백 끝에 < Qualcosa di Biondo>(1984)에서 마스트로야니와 다시 호흡을 맞췄고, 1991년 오랜 연기생활에 대한 경의의 표시인 아카데미 특별공로상을 수상한 후 거의 모습을 비치지 않다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패션쇼: Ready to Wear>(1994)에 출연하여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코미디 <그럼피어 올드맨>(1996)에 출연하는 행운도 얻었다.
1979년 그녀의 삶을 솔직하게 고백한 자서전을 출간하여 화제를 불러 보았고, 1982년에는 탈세혐의로 이탈리아에서 18일간 감옥에 살기도 했었다. 1999년에는 자신의 사진을 마구 남용하는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세기의 섹시스타 소피아 로렌의 주위는 잠잠할 날이 없다.

자신의 이름을 상표로 한 향수회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외에도 미용과 관련된 서적들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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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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