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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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05-19 출생
이대엽은 1935년 5월 10일 경남 마산에서 출생하였다. 한국영화 터프가이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대엽은 1958년 한형모 감독의 <나 혼자만이>로 데뷔했다.

이대엽이 데뷔할 당시인 50년대 말에 그의 영화는 대부분 `청춘 멜로영화`로 단순히 의리파 사나이 역할은 아니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남성다움을 드러낸 것은 1960년 조긍하 감독의 <철조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대엽이라는 이름 석자를 대중들에게 부각시킨 영화는 <돌아온 외팔이>였다. 박노식이 주연을 맡았던 용팔이 시리즈에 비견할 만한 이 시리즈는 홍콩과 한국의 영화적 유대관계를 보여주는 사례임과 동시에 그를 의협객의 대표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그후 대략 130여 편이란 다작의 작품 속에서 그의 이미지는 거의 한결같이 의리파 사나이였다. 그는 비교적 최근까지 조연으로 출연했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마지막 작품은 1978년 <수병과 제독>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그는 3선 의원(제11대 ∼ 13대 국회의원 당선)을 지낸 정치인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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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05-19 출생
이대엽은 1935년 5월 10일 경남 마산에서 출생하였다. 한국영화 터프가이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대엽은 1958년 한형모 감독의 <나 혼자만이>로 데뷔했다.

이대엽이 데뷔할 당시인 50년대 말에 그의 영화는 대부분 `청춘 멜로영화`로 단순히 의리파 사나이 역할은 아니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남성다움을 드러낸 것은 1960년 조긍하 감독의 <철조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대엽이라는 이름 석자를 대중들에게 부각시킨 영화는 <돌아온 외팔이>였다. 박노식이 주연을 맡았던 용팔이 시리즈에 비견할 만한 이 시리즈는 홍콩과 한국의 영화적 유대관계를 보여주는 사례임과 동시에 그를 의협객의 대표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그후 대략 130여 편이란 다작의 작품 속에서 그의 이미지는 거의 한결같이 의리파 사나이였다. 그는 비교적 최근까지 조연으로 출연했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마지막 작품은 1978년 <수병과 제독>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그는 3선 의원(제11대 ∼ 13대 국회의원 당선)을 지낸 정치인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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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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