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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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3-02-25출생ㅣ영국
1943년 2월 25일 영국 리버풀에서 출생한 조지 해리슨은 음악을 좋아했던 부모님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어릴 때부터 기타 연습에 매진하며 음악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레벨스라는 그룹을 조직해 오디션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는, 역시 기타와 로큰롤에 심취해있던 같은 학교의 폴 매카트니를 만나 교류하게 되었고, 폴 매카트니가 친구 아이반 본의 소개로 존 레논을 만난 후 쿼리멘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폴의 소개로 조지 해리슨이 합류하게 된다.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후, 드러머 피트 베스트와 베이시스트 스튜어트 서트클리프까지 영입해 새롭게 태어난 ‘비틀즈’는 함부르크로 연주여행을 떠난다. 그 곳의 클럽에서 펼쳐지던 그들의 공연은 미성년자였던 조지 해리슨이 강제로 추방된데 이어 다른 멤버들도 어쩔 수 없이 리버풀에 돌아오게 되면서 막을 내리지만, 이후 리버풀의 클럽에서 공연을 지속하며 인지도를 높여 나갔고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만나게 된다. 마침내 1962년 조지 마틴의 지휘 아래 첫 싱글 < Love Me Do>를 발매하게 된다. 1958년 열다섯 살의 나이로 쿼리멘에 합류해 1970년 비틀즈로 해체하기까지 약 10여 년의 시간동안, 조지 해리슨은 리드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로서 ‘Taxman’,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Here Comes the Sun’ 그리고 ‘Something’등 비틀즈의 명곡들을 작곡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영향력이 대중 음악과 더 넓은 세계에 퍼지는 시작에 불과했다. ‘Norwegian Wood,’ ‘Love You To’ 와 ‘Within You, Without You’ 같은 곡에서 인도악기 시타르를 사용한 것은 1960년대의 팝뮤직에 혁명을 일으켰고 인도 시타르 거장 라비 샹카와의 평생에 걸친 우정은 인도 철학과 음악, 종교를 서양에 가져오는데 기여했다. “그는 분명히 혁신가였다. R&B와 록, 로커빌리의 특정 요소들을 흡수했고 독특한 무언가를 창조해냈다.” 라고 에릭 클랩튼이 말했듯이 조지 해리슨은 대담했고, 음악에서도 세상 속에서도 늘 인습을 타파하는 사람이었다. 1970년 비틀즈의 해체 이후, 조지는 대담하게 그의 솔로 경력에 착수했다. 그의 혁신적인 데뷔작, 3장의 앨범으로 구성된 < All Things Must Pass>와 그의 첫 번째 싱글 ‘My Sweet Lord’는 바로 차트 1위를 차지했고, 7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그의 저력을 과시했다. 또한 라비 샹카의 간청으로 자연 재해와 내전으로 황폐해진 방글라데시에 인도적인 구호를 하기 위해서 1971년, 자선 콘서트를 열었다. 모든 록스타들이 함께 한 전세계 최초 합동 공연인 이 콘서트는 그의 친구들 라비 샹카, 에릭 클랩튼, 빌리 프레스톤, 밥 딜런 그리고 링고 스타의 지지를 등에 업은 프론트 맨으로서의 조지 해리슨을 보여주었다. 1974년 조지 해리슨은 그만의 레이블인 ‘다크 호스’를 차리고 라비 샹카, 빌리 프레스톤과 함께 30일 북미 투어를 개최했다. 그는 1970년대 내내 성공적인 솔로 앨범들을 계속 발표 했고, 다른 아티스트들의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다.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78년 영화 <몬티 파이튼의 브라이언의 삶>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핸드 메이드 영화사를 설립했고, 이것은 1980년대 영국 영화 산업의 부활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영화사는 < Withnail and I>, < MonaLisa>, < Time Bandits>를 포함한 몇 개의 획기적인 영화들을 만들어냈고, 1980년대 영국 독립 영화 산업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러한 업적을 기반으로 2002년, 조지 해리슨은 영국 독립 영화 어워드(The British Independent Film Awards)에서 사후 평생 공로상을 수여 받았다. 1987년 조지 해리슨은 히트곡 ‘Got My Mind Set On You’ 를 피처링한 ELO 대표 제프 린과 공동 제작한 플래티넘 앨범 < Cloud Nine>으로 다시 한번 대히트를 기록했고, 이 콜라보레이션은 그에게 제프 린, 밥 딜런, 톰 페티 그리고 로이 오비슨과 함께 Wilburys로 여행을 가도록 영감을 주었다. 프로젝트 밴드 The Traveling Wilburys는 두 개의 성공적인 앨범을 작곡하고 녹음했으며, ‘Handle With Care’와 ‘End of The Line’은 크게 히트했다. 조지 해리슨은 1991년에 잠시 돌아온 후 1992년 일본에서 라이브 앨범 발매를 하며 에릭 클랩튼과 공연 투어를 했다. 영국에 소재한 프라이어 파크의 엄청난 사유지와 정원을 가꾸면서 30여 년을 보낸 그는 공적, 사적, 그리고 영적인 삶의 모든 측면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여지없이 불태웠으며 2001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조지 해리슨> 보도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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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02-25 출생영국 데뷔
1943년 2월 25일 영국 리버풀에서 출생한 조지 해리슨은 음악을 좋아했던 부모님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어릴 때부터 기타 연습에 매진하며 음악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레벨스라는 그룹을 조직해 오디션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는, 역시 기타와 로큰롤에 심취해있던 같은 학교의 폴 매카트니를 만나 교류하게 되었고, 폴 매카트니가 친구 아이반 본의 소개로 존 레논을 만난 후 쿼리멘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폴의 소개로 조지 해리슨이 합류하게 된다.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후, 드러머 피트 베스트와 베이시스트 스튜어트 서트클리프까지 영입해 새롭게 태어난 ‘비틀즈’는 함부르크로 연주여행을 떠난다. 그 곳의 클럽에서 펼쳐지던 그들의 공연은 미성년자였던 조지 해리슨이 강제로 추방된데 이어 다른 멤버들도 어쩔 수 없이 리버풀에 돌아오게 되면서 막을 내리지만, 이후 리버풀의 클럽에서 공연을 지속하며 인지도를 높여 나갔고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만나게 된다. 마침내 1962년 조지 마틴의 지휘 아래 첫 싱글 < Love Me Do>를 발매하게 된다. 1958년 열다섯 살의 나이로 쿼리멘에 합류해 1970년 비틀즈로 해체하기까지 약 10여 년의 시간동안, 조지 해리슨은 리드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로서 ‘Taxman’,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Here Comes the Sun’ 그리고 ‘Something’등 비틀즈의 명곡들을 작곡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영향력이 대중 음악과 더 넓은 세계에 퍼지는 시작에 불과했다. ‘Norwegian Wood,’ ‘Love You To’ 와 ‘Within You, Without You’ 같은 곡에서 인도악기 시타르를 사용한 것은 1960년대의 팝뮤직에 혁명을 일으켰고 인도 시타르 거장 라비 샹카와의 평생에 걸친 우정은 인도 철학과 음악, 종교를 서양에 가져오는데 기여했다. “그는 분명히 혁신가였다. R&B와 록, 로커빌리의 특정 요소들을 흡수했고 독특한 무언가를 창조해냈다.” 라고 에릭 클랩튼이 말했듯이 조지 해리슨은 대담했고, 음악에서도 세상 속에서도 늘 인습을 타파하는 사람이었다. 1970년 비틀즈의 해체 이후, 조지는 대담하게 그의 솔로 경력에 착수했다. 그의 혁신적인 데뷔작, 3장의 앨범으로 구성된 < All Things Must Pass>와 그의 첫 번째 싱글 ‘My Sweet Lord’는 바로 차트 1위를 차지했고, 7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그의 저력을 과시했다. 또한 라비 샹카의 간청으로 자연 재해와 내전으로 황폐해진 방글라데시에 인도적인 구호를 하기 위해서 1971년, 자선 콘서트를 열었다. 모든 록스타들이 함께 한 전세계 최초 합동 공연인 이 콘서트는 그의 친구들 라비 샹카, 에릭 클랩튼, 빌리 프레스톤, 밥 딜런 그리고 링고 스타의 지지를 등에 업은 프론트 맨으로서의 조지 해리슨을 보여주었다. 1974년 조지 해리슨은 그만의 레이블인 ‘다크 호스’를 차리고 라비 샹카, 빌리 프레스톤과 함께 30일 북미 투어를 개최했다. 그는 1970년대 내내 성공적인 솔로 앨범들을 계속 발표 했고, 다른 아티스트들의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다.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78년 영화 <몬티 파이튼의 브라이언의 삶>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핸드 메이드 영화사를 설립했고, 이것은 1980년대 영국 영화 산업의 부활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영화사는 < Withnail and I>, < MonaLisa>, < Time Bandits>를 포함한 몇 개의 획기적인 영화들을 만들어냈고, 1980년대 영국 독립 영화 산업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러한 업적을 기반으로 2002년, 조지 해리슨은 영국 독립 영화 어워드(The British Independent Film Awards)에서 사후 평생 공로상을 수여 받았다. 1987년 조지 해리슨은 히트곡 ‘Got My Mind Set On You’ 를 피처링한 ELO 대표 제프 린과 공동 제작한 플래티넘 앨범 < Cloud Nine>으로 다시 한번 대히트를 기록했고, 이 콜라보레이션은 그에게 제프 린, 밥 딜런, 톰 페티 그리고 로이 오비슨과 함께 Wilburys로 여행을 가도록 영감을 주었다. 프로젝트 밴드 The Traveling Wilburys는 두 개의 성공적인 앨범을 작곡하고 녹음했으며, ‘Handle With Care’와 ‘End of The Line’은 크게 히트했다. 조지 해리슨은 1991년에 잠시 돌아온 후 1992년 일본에서 라이브 앨범 발매를 하며 에릭 클랩튼과 공연 투어를 했다. 영국에 소재한 프라이어 파크의 엄청난 사유지와 정원을 가꾸면서 30여 년을 보낸 그는 공적, 사적, 그리고 영적인 삶의 모든 측면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여지없이 불태웠으며 2001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조지 해리슨> 보도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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