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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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 출생ㅣ한국
이태석 신부는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자갈치 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 갔고, 그는 집안일을 도우며 어머니를 기다리는 착한 아들이었다. 집 근처의 성당은 어린 그에게는 좋은 놀이터였다. 그에게 사제의 꿈을 가지게 한 ‘다미안 신부’의 영화를 본 곳도 성당이었다. 또한 성당에서 그는 또 다른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풍금을 독학으로 배웠고, 작곡도 했다. 중 3때는 이미 성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음악과 신앙에 대한 믿음은 가난한 환경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가 반듯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성실한 학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의대에 합격했다. 군의관 시절, 그는 가난한 사람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기로 다짐하게 되고, 이미 형제 중 한 명이 사제, 또 한 명은 수녀가 된 상황에서 자신 또한 사제가 되겠노라 어머니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그의 굳건한 마음을 저버릴 수 없어 허락하게 되고, 그는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살레시오회 수도 사제이자 의사로서 아프리카로 향하게 되었다. 그 후 그의 인생은 온통 톤즈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된다. 마흔 여덟의 불꽃 같았던 삶은 2010년 1월14일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하느님의 곁으로 돌아가며 끝을 맺게 되었다.

-<울지마, 톤즈> 보도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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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출생한국
이태석 신부는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자갈치 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 갔고, 그는 집안일을 도우며 어머니를 기다리는 착한 아들이었다. 집 근처의 성당은 어린 그에게는 좋은 놀이터였다. 그에게 사제의 꿈을 가지게 한 ‘다미안 신부’의 영화를 본 곳도 성당이었다. 또한 성당에서 그는 또 다른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풍금을 독학으로 배웠고, 작곡도 했다. 중 3때는 이미 성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음악과 신앙에 대한 믿음은 가난한 환경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가 반듯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성실한 학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의대에 합격했다. 군의관 시절, 그는 가난한 사람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기로 다짐하게 되고, 이미 형제 중 한 명이 사제, 또 한 명은 수녀가 된 상황에서 자신 또한 사제가 되겠노라 어머니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그의 굳건한 마음을 저버릴 수 없어 허락하게 되고, 그는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살레시오회 수도 사제이자 의사로서 아프리카로 향하게 되었다. 그 후 그의 인생은 온통 톤즈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된다. 마흔 여덟의 불꽃 같았던 삶은 2010년 1월14일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하느님의 곁으로 돌아가며 끝을 맺게 되었다.

-<울지마, 톤즈> 보도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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