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타짜> 조승우 -연기 잘 하는 배우의 끝없는 한판승부

2006-09-25 22:48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맥스무비=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영화와 뮤지컬을 오가며 끊임없이 자기도전을 하고 있는 배우 조승우와 <타짜> 덕분에 마주 앉았다. 이미 시사회를 통해 <범죄의 재구성> 때보다 좋은 입소문이 나고 있고, 조승우의 연기야 보탤 말이 더 없는 상황이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에서 이몽룡 역할로 출연했을 때만 해도 조승우가 이토록 큰 배우가 되리라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신의 영향력이 어떤 영화에서 발휘되는지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는 조승우는 타인의 인생을 관객을 대신해서 펼쳐주는 ‘배우’라는 직업을 자신의 그림자처럼 여기고 있었다.

조승우는 도박판의 타짜들처럼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배우다.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눈에 여러 감정을 색깔 있게 그려내 온 그는 영화 <타짜>에서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갈수록 다음을 예측할 수 없는 연기자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 원작과는 다른 고니를 만들었다

허영만, 김세영의 국민만화 <타짜>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고니' 역할에 조승우는 '미스 캐스팅'이라고 쉽게 판단을 내버렸다. 원작만화가 가지고 있던 '고니'의 모습이 조승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원작만화 속에 표현된 '고니'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면 실망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승우의 또 다른 면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때에는 더 심했어요. 실력도 검증되지 않은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쓰는 말도 안 되는 극단은 사라져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조승우는 굳이 배우로서 신비감을 고집하지 않는다. <타짜>가 처음 언론에 공개된 날, 그는 무대인사에서 “원작과는 다른 고니를 만들었다”며 그것을 감안해서 봐달라고 부탁했다. 원작과는 다른 '고니'를 만드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순수와 정열을 갖고 작품에 임하다 보니 어느새 그와 자신이 닮아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많은 관객들과 '고니'로 만나고 싶은 자신감을 얻었다.

<타짜>에서 순수했던 한 시골청년이 도박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변해가는 과정은 그가 전작 <하류인생>에서 연기한 태웅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개봉을 앞둔 시점에 와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는 그는 ‘맥락적’으로만 비슷할 뿐 다른 부분에서는 “다 틀리다”고 못을 박는다. “태웅의 목표가 여러 가지였던 반면에 고니는 딱 한 개의 뚜렷한 자기 목표가 있어요. 도박의 최고수가 되어서 인생 한 번 멋들어지게 살아보겠다는 것. 태웅과 비교했을 때 고니는 좀 더 쿨하고 기복이 많은 캐릭터인 것 같아요.”연륜이 높은 선배들과의 작업에서 오는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함께 작업할 배우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은 했지만 그것이 부담으로 확장되지는 않았다. 또래 배우들과의 작업에서 느낄 수 없었던 현장 분위기가 그의 연기에 '성숙미'를 더해준 탓일까. 촬영이 들어가기 전에 그의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던 “내가 여기에 잘 묻힐 수 있을까? 그 분들에게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같은 생각들은 그들과 연기의 합을 맞추는 순간 모두 다 사라져버렸다.

# 연기를 보는 재미란 이런 것이다

최동훈 감독이 연출한 <타짜>는 배우들의 연기만 봐도 본전 생각이 나지 않는 영화다. 어느 누구 하나 튀지 않고 자기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 '연기를 보는 재미란 이런 것'을 새삼스럽게 증명해낸다. 현장에서 선배들의 연기를 보면서 그는 많은 것을 배웠고. 그것을 자기 안으로 끌어오기 위해 노력했다.

조승우는 얼음과 불의 이미지가 오버랩 되는 배우다. 연기할 때 있어서 만큼은 누군가의 기에 눌려본 적이 없던 그는 백윤식과의 첫 촬영을 앞두고 신기한 경험을 했다. 평경장(백윤식)이 고니를 노려보는 장면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이 내려간 것이다. 이제까지 연기를 하면서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 배역의 기를 흡수하는 입장에서 연기를 해오던 그가 상대방을 압도하는 연기에 대해서 체득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편집됐지만 상황과 감정을 모두 컨트롤 할 수 있는 연기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어요.”

타인의 연기를 보고 감명 받지 않는 연기자는 성장할 수 없다. 조승우는 상대배우의 연기에서 기를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게 하는 상대배우를 통해 그는 자신의 연기를 조금씩 발전시켜 나갔다. 이번 작품에서 조승우로 하여금 가장 많은 기를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배우는 기술을 부리는 것보다 기술을 잡아내는 것에 쾌락을 느끼는 아귀 역의 김윤석이었다.

“김윤석 선배님을 처음 만난 것은 저의 뮤지컬 데뷔작인 <의형제>에서였어요. 요절가수인 고 김현식 씨와 닮은 김윤석 선배님과는 서로 정감을 가지고 있었던 덕에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어요. 나이차가 띠 동갑 보다도 더 났지만 당시 형 집에서 눌러 살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제가 지금의 형수님도 소개시켜 준 주인공이고요.(웃음) 김윤석 선배님이 영화를 많이 하시지는 않았지만 연륜에서 느껴지는 내공이 엄청났어요. 그 파워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어요."조승우가 선택한 작품들이 증명해 주지만 그는 지금까지 작품을 선택할 때 긴장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주는 작품을 골라왔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면 좋겠어요. 너무 재미있게 읽은 시나리오인데 선뜻 다가서기 힘든 작품들이 있어요. 여태껏 그래왔던 것 같아요. 항상 산 넘어 산이었어요.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작품들을 골라왔던 것 같아요.”

배우에게 시나리오의 첫 느낌은 중요하다. 작품 수락을 하기도 전에 그 속의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하는 시나리오라면 그는 주저 없이 그 작품을 선택한다고 했다. 배우로 하여금 장면 장면의 그림이 그려지게 하는 시나리오. 최동훈 감독이 건네준 <타짜> 시나리오도 그러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의 느꼈던 모든 것들은 만화하고는 확연히 달랐어요. 시대적인 상황도 다르고 원작과는 다른 고니를 만들 수 밖에 없었어요.”

연극, 뮤지컬, 스크린을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펼쳤지만 그의 연기를 드라마에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예전에는 핑계를 많이 댔어요. 드라마는 제가 순발력이 힘들어서 못할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은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음만 먹으면 채널을 돌릴 수 있는 TV라는 매체는 제가 가지고 있는 연기관 하고는 안 맞는 것 같아요.”

# 베드신에 남자배우가 부담을 느낄 자격은 없다

배우는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배우는 그저 영화로 모든 걸 보여줄 뿐이다. “원래 정사신이 있었어요. 편집 과정에서 빠졌는데 극의 흐름상 잘 빠진 것 같아요. 동적인 행위 보다는 지금 영화상에서 보여지는 그 정도가 정마담과 고니의 관계를 더 진득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베드신에 대한 부담감이요.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김혜수 선배님도 그러고 있는데 그 상황에서 남자배우가 부담을 느낄 자격은 없죠.”

그는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면모도 있다. 조승우가 듣기 싫어하는 말은 ‘이미지 변신’, ‘재발견’ 같은 단어들이다. 그는 연기자로서 이 역할도 해보고 저 역할도 해보고 싶은 배우일 뿐, 그런 단어에는 얽매이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강조했다.배우로서 그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는 평범한 장면보다 다이나믹하고 센 장면을 연기할 때 배우로서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조승우를 배우로 만든 <춘향뎐>이 그랬듯 <타짜>는 그의 전환점이 되어줄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서 그가 연기에 가지고 있는 애정이 읽혔다. “정통 코미디 장르는 힘들 것 같아요. 제가 유해진 선배님처럼 상대방을 웃기는 데에는 재주가 없거든요. 그것은 정말로 센스이자 감각인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순발력이 없고 오히려 그것들보다 슬랩스틱을 더 좋아해요.”

빼어난 연기는 연기하는 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고니의 캐릭터를 설명할 때 그러잖아도 맑은 조승우의 눈은 더 밝아진다. “시나리오에 나온 캐릭터를 단순히 흉내 내는 것에서 그치고 싶지 않았어요.” 배우로서 고정된 이미지보다는 항상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조승우는 <타짜>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흥분되는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 최동훈 감독도 나를 못 믿어 하셨다

조승우는 영화 촬영을 앞두고 늘 상상 속에 빠져들었다. 내게 맡겨진 이 역할의 인물이 현실 밖으로 나왔을 때 어떻게 해야지 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까? 배우들의 의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최동훈 감독과의 작업은 그가 고니라는 캐릭터에 알맞은 옷을 입히는 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주었다. <타짜>의 경우 시나리오를 보지 않고도 감독님에 대한 믿음만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대사는 극중 고니 캐릭터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바꾸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요. 감독님 생각은 어떤가요?' 하는 식으로 제 의견을 피력하면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졌어요. 문제는 최동훈 감독님이 현장에서는 배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놓고 편집에서 마음에 안 들면 잘라버리는 스타일이었다는 거죠.(웃음)”

현장에서 배우와 스탭들은 모두 타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조승우의 경우에는 더 심했다. 전문 타짜가 보아도 인정할만한 실력이 되기 위해 그는 언제나 손에 화투를 가지고 다니면서 기술을 익혀야 했다. “어떤 감독이건 처음에는 배우들을 못 미더워하시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배우들이 표현해 줄 수 있을까. 하지만 감독이 원하는 대로 배우가 해주기로 하면 그 다음부터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처음에는 최동훈 감독님도 저를 못 믿어 하셨어요 화투를 못 치는 내가 타짜 역할을 해야 하니까 불안했던 거죠. 혹시나 내가 못하면 대역을 써야 했으니까요. 다행히도 그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어요.(웃음)”조승우는 최동훈 감독을 처음 만난 날의 인상을 아직도 지울 수 없었다고 했다. 조승우가 그를 처음 만난 날은 최동훈 감독이 한참 <범죄의 재구성> 시나리오 작업 중 일때였다. “보통 데뷔를 앞두고 있는 감독들은 시나리오 작업이 힘들어서 초췌한 얼굴을 하길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최동훈 감독님은 달랐어요. 이미 여러 작품을 한 것 같은 여유가 그에게서 느껴졌어요.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 친해지기 힘든 사람인데 감독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런 최동훈 감독이 아니라면 <타짜> 속편은 만들어진다고 해도 출연할 이유가 없겠죠.”

# 내가 선택한 작품에 후회한 적은 없다

'조승우가 왜 그런 작품을 출연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는 조승우의 필모그래피를 망치는 작품이다. 조승우의 연기가 퇴보했다. <말아톤> 이후 차기작을 그런 작품으로 선택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전작 <도마뱀>에 대해 자신에게 쏟아진 반응들에 그는 영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처음 받아봤던 시나리오하고 영화는 느낌이 많이 달랐지만 그는 "그래도 내가 선택한 작품이기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매 작품마다 센 역할만 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작품마다 그 성격에 맞는 연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언제부터 제 이름 앞에 연기파, 성격파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 받았던 혹평은 너무 가혹했어요. <도마뱀>에는 '이것이 조승우의 연기다'라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고요.”

<타짜>에서 조승우는 앞만 보고 달린다. 그의 존재가 아니었으면 ‘고니’라는 캐릭터가 크게 부각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 조승우는 한결 여유로워졌다. 조승우는 요즘 오직 어떤 작품에 자신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숱한 인터뷰에 단련된 스타들은 어떤 이미지를 보여줄지 계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에겐 연기도 생활도 별 꾸밈이 없다. 모든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는 그에게서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얌전하면서도 할 말은 하는 매력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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