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최동훈 감독 ② “영화에서는 배우가 중요하다”

2015-07-27 17:21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맥스무비=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 <암살> 최동훈 감독 ① 멋이 살아있는 감독에서 이어집니다.

※ 최동훈 감독의 솔직한 문답 속에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암살>을 보고 읽으면 감흥이 두 배로 깊어집니다.

이정재에게 최동훈 감독에 대한 강한 신뢰가 느껴지더라. 자신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깨고 발견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는 말을 하던데. 난 뽀빠이가 너무 좋다. 뽀빠이는 이상한 악당이다. 혼자 흉계를 꾸미다가 피해자가 되는 악당. <도둑들> 첫 촬영 때 이정재라는 배우의 연기를 보는데 정말 “우와, 죽인다” 이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보니 분량이 너무 적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염석진이라는 인물이 나온 뒤에 자연스레 이정재를 떠올렸다. 이정재는 완전히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배우니까 잘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랄까. 이정재는 <암살> 촬영을 마치 마지막 작품을 하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임해줬다. 그래서 나도 더 신이 나서 열심히 찍고. 그런 주고 받는 느낌이 좋고, 고마웠다.

안옥윤은 전지현이 아니면 못할 것 같은 역할이다. 사람들은 전지현의 밝은 연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만약 그런 연기를 하지 않는다면? 전지현은 본능이 굉장히 강한 배우고,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안옥윤은 멋이 있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하지만 아름답게 보이려는 치장 같은 것은 없다. 임무가 주어지면 그 임무를 어떻게 하든 해내려는 사람. 아름답고 느린 터미네이터 같다고 할까. 예쁘게 찍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안옥윤이 아름답구나’ 느끼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낭중지추인지 머리 질끈 동여 매고 분장을 거의 안 해도 아름답더라.하정우의 하와이 피스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와이 피스톨은 안옥윤과 전혀 다른 인간이다. 이 암살 사건에 낄 이유가 없는데 자석에 이끌리듯 ‘탁’ 하고 붙어버리는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가 불쌍하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로맨스가 아니라 동질감이자 연민이랄까. ‘당신은 지금 무척 힘들지만 꿋꿋이 견디고 있구나. 그러니 당신은 살아서 돌아가.’ 안옥윤도 그런 하와이 피스톨의 마음을 안다. 하와이 피스톨은 방관자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내가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는 단호한 멋이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그걸 누가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하정우처럼 친근하면서도 우아한 배우가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시나리오를 써나가며 기뻤다. ‘드디어 하정우라는 배우와 작업할 수 있겠다. 안 한다고 하면 안되는데.’(웃음)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결국 ‘그들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이름 없이 죽어간 독립군들과 함께 염석진을 기억하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영화를 미리 본 사람들이 이전의 최동훈이라면 법정 장면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들을 하는데, 나는 그 장면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뉘른베르크의 재판>(1961)이라는 영화가 있다. 2차 대전 나치 전범 재판인데 그 재판도 결국 냉전이 시작되면서 흐지부지된다. 우리도 그랬다. 하지만 1933년의 일은 남아있는 것이다. 영화에는 두 명의 타깃이 존재한다. 사실 그들을 쏘면 드라마가 끝나야 하는데, 마지막 타깃이 남아있는 거다. 그게 이 영화가 말하는 진짜 ‘암살’일수도 있다. 배우 김윤석이 영화를 보고 전화를 했는데 염석진이 허허벌판에서 쓰러지는 장면에서 “저 사람은 그렇게 살았지만 남은 게 하나도 없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 다들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정말 좋겠다.

안옥윤은 미츠코로 살아가다가 염석진을 응징하는 것이었을 텐데, 그 사이의 삶에 대해서는 상상해본 적이 있나? 해방 후 누군가 그녀에게 계속 돈과 정보를 준다. 그건 누구였을까? 그런 것들을 미루어 추측하면 어떨까. 꽉 짜여진 영화가 가진 재미와 그걸 찍는 재미도 있지만, 빈틈이 있고 드라마가 멈춘 데서 오는 재미도 있다. 재미는 넓은 영역에 있으니까 그걸 찾아가는 거지. 그래서 그 부분은 비워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감독은 결국 조율해야 하고, 또 결정해야 하는 자리다.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모으는 것만큼, 무게 추를 조절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내 영화는 배우들이 연기하기 좋다. 서로 조금씩 나눠 가지니까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오히려 수월하다. <도둑들> 때는 그렇게 뭉쳐 놓으면 파토가 날 거라는 말을 들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배우들이 부담감을 나눠 가지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세 인물이 중심이기는 하지만, 속사포를 연기한 조진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매력적인 배우다. 사실 시나리오는 문장에 불과한 건데 배우가 그걸 뱉는 순간 인물이 만들어지지 않나. 그런 과정이 좋은 것이다. 그간의 영화들에 대해 대사가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배우들이 대사를 맛있게 한 것이다. 평범한 대사도 배우가 연기를 잘하면 보석이 된다는 걸 종종 느꼈다. 영화에서는 중요한 대사일수록 아무렇지 않게 뱉어야 한다. 그걸 하는 건 배우들이다. 영화에서는 배우가, 정말 중요한 거다.그 말을 들으니 영화의 앞뒤에서 무게를 잡아주는 조승우 배우의 연기가 생각난다. 실제 인물인 김원봉 선생을 영화에 꼭 담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밖에 안 나오니까 꼭 알려진 배우가 했으면 했다. 조승우는 원래 특별 출연을 안 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전화를 해서 “시나리오 보고 마음에 들면 하고 안 들면 안 해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배우는 친분으로 캐스팅하는 게 아니다. 배우도 자신의 인생을 걸고 한 작품을 하는 거고, 몇 달 동안 그 인물이 되어 인생을 살려면 본인이 흥미롭고 재밌어야 한다. 그런데 조승우가 흔쾌히 “시나리오가 재밌어서 하는 거야”라면서 응해줬다. <타짜> 이후 9년 만인데,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마음이었다.

짧은 출연이었지만, 조승우라는 배우가 최동훈 감독과 정말 잘 맞는구나 싶던데. 실은 조승우가 날 엄청 놀렸다. “감독님 영화를 왜 이렇게 열심히 찍으려고 해? 변했다.” 내가 “<타짜> 때 얼마나 죽을 힘을 다해 찍었는데!”이렇게 답하면 “아닌데? 감독님 야구하고 놀고 그랬는데”하고 계속 장난을 쳤다. 다시 즐겁게 작업하고 싶다. 그러려면 좋은 시나리오를 써야겠지. 그래야 같이 할 수 있을 테니까.

글 윤이나(영화 칼럼니스트) | 사진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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