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BIFAN | 비밀의 열쇠를 쥔 이상호, <일어나, 김광석>

2016-07-30 16:20 차지수 기자

[맥스무비= 차지수 기자]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 고(故) 김광석이 어느 날 변사체로 발견됐을 때 많은 이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사인은 자살로 판명됐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 뒤로 갖가지 의혹의 시선이 드리웠다. 타살을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했던 탓에 점차 그의 아름다운 음악만이 추억됐다. 이 잔잔한 물결 위로 <다이빙벨>(2015)을 연출한 이상호 감독이 돌을 던졌다. 20년이 지났지만 죽음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는 1996년 그 날과 같다. 20회 BIFAN에서 <일어나, 김광석>의 이상호 감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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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광석의 죽음을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라디오에서 고인의 노래를 들었다. 날 야단치는 것 같더라. 노래를 들을 때마다 미안해졌다. 노래가 아니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올해 BIFAN20회를 맞아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논란이 됐던 <다이빙벨>을 부천에서 또 한 번 특별 상영하게 됐다.정말 감사한 일이다.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만든 영화고, 나한텐 자식 같은 존재다. 대형극장 어디에서도 이 영화를 틀어주지 않았다. 사실 그해 부산국제영화제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밖에서 술이라도 마시면 혹시 안 좋게 보일까봐, 숙소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죄인 같은 심정으로 있었는데 부천에서 기꺼이 <다이빙벨>을 특별 상영해줘서 새롭게 평가 받은 느낌이다. 영화계에 많이 고맙다.

<일어나, 김광석>‘20년 취재파일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토록 취재가 길어진 이유가 뭔가?마라톤을 뛰려고 했던 건 아니다. 100미터만 뛰려고 했는데 자꾸만 결승선이 멀어졌다. 수차례 노력은 했지만 매번 충분한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꾸려졌던 수사팀은 그쪽 사정으로 해체됐고, <시사매거진 2580>(MBC)에서는 윗선의 허락을 못 받아서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후 <사실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또 해보려고 했지만, 삼성 엑스파일 보도 후 프로그램이 사라져서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올해는 김광석 사망 20주기이기도 하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건가?시간이 더 지나면 영원히 진실이 묻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증언해주실 분들도 이제 연로하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심정으로 영화를 내놓게 됐다.

의문의 시작은 무엇이었나? 특별히 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일이 터진 초반부터 취재를 했는데, 사건 당일에 대한 진술들이 불일치했다. 난 그저 한 명의 팬에 불과했지만, 기자 입장에서 봤을 때 수사가 너무 엉터리였고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다. 결국 자살로 판명났고,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라디오에서 고인의 노래를 들었다. 날 야단치는 것 같더라. 노래를 들을 때마다 미안해졌다. 노래가 아니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일어나, 김광석>
<일어나, 김광석>

고인의 지인들이 취재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나?처음에 김광석 씨의 지인들 절반은 나를 욕했다. 심지어 손찌검도 당한 적 있다. “명예롭게 음악적 성취를 위해 결단하신 분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하더라. 그런데 내가 계속 취재에 매달리니까 점차 제보도 해주고, 자료도 제공해줬다. 이제 고인을 사랑하고 친분이 있던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지지해주신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죽음의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영화에서 제시하는 의문의 방향이 한 사람에게 쏠려 있는 느낌이다.글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김광석 사건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고 싶어서 열린 결말로 만들었다. 누군가는 이걸 보고도 자살이라고 생각할 거고, 누군가는 타살이라고 생각할 거다. 영화를 보고 토론을 시작할 수 있도록 모든 팩트를 넣어 놨다. 그 중 결정적인 단서들도 몇 개 있다. 특별히 강조해놓지는 않았지만, 눈이 맑은 분들은 알 수 있을 거다.

고인의 부인인 서해순 씨가 어쩌면 이 영화를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겠다.열린 결말을 제시했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분이 카메라 앞에서 떳떳하게 발언한 내용들을 담은 것이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협조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민·형사 소송을 비롯해 그 이상의 것들에 대해서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오래된 일이라 증거도 찾기 힘들고, 기억도 가물가물한 과거다. 아직도 파헤칠 게  많이 남았나?모든 걸 다 들여다볼 수는 없다. 아쉬운 건 내가 20년 전 텍스트로 남겼던 기록들이 물에 젖어서 복원하기 힘들어졌다는 것. 열악한 상황이지만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들었다. 분명히 이 영화 이후 새로운 국면이 시작될 거라고 믿는다. 영화 속에 중요한 단서들을 모두 제시해놨기 때문에, 이 사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함께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일어나, 김광석>
<일어나, 김광석>

열람할 수 없는 비공개 자료들이 남았지만, 공소시효는 이미 끝났다.법적인 제한은 문제될 것이 없다. 지금의 경찰은 20년 전과는 또 다르다. 과거에 미흡했다고 생각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재수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또 여론이라는 게 있지 않나. 보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고 공분하신다면, 어떻게든 비밀의 자물쇠가 열릴 거라고 믿는다. 더 이상 진실이 묻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감독이기 전에 기자로서 수십 년을 격렬하게 보냈다. 그걸 다 버티는 신념은 뭔가?인생이 허무해서 그렇다.(웃음) 대학 때 내 눈앞에서 이한열 선배가 돌아가시는 걸 보고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더 강렬하게 살아있고 싶은 마음에 기자를 하게 됐고,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국민의 생명이다. 김광석 문제도 한 가수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름 없이 죽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 의식에서 출발한 거다. 의문의 죽음을 국가가 책임지지 못한다면, 안전하지 못한 사회가 아니겠나. 기자로서 나라도 포기하지 못한다. 가장 강렬하게 사는 방식은 위험을 감수하는 거다. 아직까지 살아있는 거 보면, 하늘의 운인 것 같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최근 정상화의 실마리를 찾았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바라보는 심경이 남다를 것 같은데?내가 당사자로서 2년 동안 항상 죄의식 속에 부채감을 느꼈는데, 최근에 부산시와 영화제 측이 합의를 도출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하지만 <다이빙벨> 진실의 일부나마 품어주셨던 이용관 위원장의 명예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출된 합의라, 다른 영화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왕이면 이용관 위원장에 대한 충분한 사과와 재평가가 함께 이뤄졌으면 한다.

이상호 감독
이상호 감독
“김광석 문제도 한 가수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름 없이 죽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 의식에서 출발한 거다. 의문의 죽음을 국가가 책임지지 못한다면, 안전하지 못한 사회가 아니겠나.”
당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상영이 문제시 됐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최근 ‘사드 파문’에서도 알 수 있듯, 본원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다. “이 동네 안 살면서 왜 그래”라는 논리는 지독하게 엉터리다. 모든 국민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개입할 권한이 있다. 세월호 사건 때도 그 배가 왜 침몰했는지, 왜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 논의 자체를 못하게 하면서 종북몰이를 하고, 언론들이 앞장서서 주권자들의 개입 여지를 막는다. 독재의 민낯을 국민들에게 공개하지 않기 위한 언론 플레이다.

이번 부천에서 특별 상영한 <다이빙벨>은 해외영화제 출품을 위한 확장판이다. 더 강조된 내용은 무엇인가?7분 정도 늘려서 더 친절해졌다. 해외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춰 애니메이션이나 추가 자료들이 더 들어갔다. 본판을 봤더라도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일 좋아하는 김광석의 노래는?원래 ‘나의 노래’를 가장 좋아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외사랑’을 테마곡으로 썼다. 이 노래야말로 그의 죽음에 가장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노래다. ‘외사랑’을 통해 고(故) 김광석을 더 다양한 방법으로 알게 되길 바란다.

| 사진 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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